‘국내 1호’ 대신증권 시세전광판 역사 속으로

‘국내 1호’ 대신증권 시세전광판 역사 속으로

최선을 기자
입력 2016-12-23 22:52
수정 2016-12-23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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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명동 이전으로 시세판 운영 종료

고객과 37년 애환… 주문표 뿌리며 작별
건물 지키던 대형 황소상도 통째로 옮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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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여의도 대신증권 본사에서 열린 ‘국내 1호 주식시세 전광판’ 철거식에서 참석자들이 주식거래 주문지를 뿌리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23일 서울 여의도 대신증권 본사에서 열린 ‘국내 1호 주식시세 전광판’ 철거식에서 참석자들이 주식거래 주문지를 뿌리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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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증권의 또 다른 명물인 ‘황우’를 철거하는 모습. 대신증권은 여의도에서 명동으로 사옥을 옮긴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대신증권의 또 다른 명물인 ‘황우’를 철거하는 모습. 대신증권은 여의도에서 명동으로 사옥을 옮긴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37년 동안 수많은 투자자들을 울고 웃게 만들었던 ‘국내 1호’ 주식 시세전광판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3일 대신증권은 서울 여의도에 마지막으로 남은 대형 시세판의 운영을 끝냈다. 주식투자자들의 ‘여의도 사랑방’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모습을 이제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시세판은 1979년 양재봉 대신증권 창업주가 업계 최초로 도입한 것이다. 칠판에 분필로 주가를 적어 넣던 시절 전산화된 시세판은 단숨에 명물로 떠올랐다. 이후 시세판은 여의도 증권가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1980년대 증시 호황기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시세판은 투자자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2000년대 이후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나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이 활성화되면서 시세판은 외면받았다. 대신증권은 “시세판의 상징성을 고려해 유지해 왔으나 이번에 명동으로 본사를 옮기면서 고민 끝에 운영을 중단하게 됐다”고 밝혔다. 나재철 대신증권 대표는 “시세판을 보며 증시의 희로애락을 겪었던 사람으로서 개인적으로도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이날 대신증권은 시세판 앞에서 마지막으로 ‘주문표 뿌리기 세리머니’를 진행했다. 어르신 단골 고객들이 마지막 날까지 객장을 찾아 작별 인사를 했다. 행사에 앞서 대신증권 건물 앞을 지키던 대형 황소상 ‘황우’를 통째로 옮기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황우는 1994년 제작된 여의도 첫 황소상으로 시세판과 함께 증권가의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황우는 서울 대림동 대신증권 연수원에 임시로 보관하다가 내년 명동 신사옥 앞에 조성되는 공원에 새롭게 자리잡을 예정이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2016-12-2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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