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주요 정당 역사상 첫 여성 대선후보…최후의 유리천장도 깰까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오는 26일(현지시간)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된다.민주당은 25일부터 나흘간 펜실베이니아 주(州) 필라델피아의 웰스파고 센터에서 전당대회를 열어 클린턴 전 장관을 대선후보로 지명한다.
클린턴 전 장관의 후보수락 연설은 마지막 날인 28일로 잡혀 있지만, 후보로 최종 확정되는 것은 주별 공개투표인 ‘롤 콜’((Roll Call·호명)이 실시되는 26일이다.
미 주요 정당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선후보가 탄생하는 역사적 순간이 된다.
◇첫 여성 대통령 꿈꾸는 힐러리…228년간 44대에 걸쳐 모두 남성 대통령
미국 역사에서 지금까지 여성 대통령은 물론 여성 부통령도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228년간 44대에 걸쳐 모두 남성 대통령이었다.
미국의 양대 주요 정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에서 여성이 후보로 지명된 역사도 없다. 제럴린 페라로(1984년·민주)와 세라 페일린(2008년·공화)이 부통령 후보로 나선 것이 전부다.
그만큼 클린턴 전 장관의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은 그 자체로 새로운 역사다.
클린턴 전 장관 자신도 경선승리 연설에서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장벽인 ‘유리천장’을 깨는 데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자평했다.
클린턴 전 장관이 11월 대선에서 승리하면 유리천장을 또 한 번 깨면서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다.
첫 부부 대통령이 되는 의미도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의 남편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다.
클린턴 전 장관은 1947년 10월 26일 미국 일리노이 주(州) 시카고에서 3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 휴 앨즈워스 로댐은 영국 웨일스 혈통으로, 시카고 시내에서 작은 섬유업체를 운영했고 어머니인 도로시 엠바 하월 로댐은 전업주부였다. 도로시의 모친, 즉 클린턴 전 장관의 외할머니는 프랑스계 캐나다인과 인디언 혼혈이다.
3살이 되던 해에 시카고 교외의 파크리지로 이사했고 이곳에서 두 명의 남동생 휴이 로댐, 토니 로댐과 함께 자랐다.
클린턴 전 장관은 어려서부터 활동적이었고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다. 테니스와 발레, 수영 등 스포츠를 좋아했고 걸 스카우트 활동을 하면서 지도력을 키웠다.
클린턴 전 장관은 기독교를 믿는 보수적 가정에서 성장한 탓인지 학생 시절까지만 해도 공화당 성향을 보였다.
고교 때 ‘신보수주의 운동’의 기수였던 공화당 대통령 후보 베리 골드워터의 선거캠프에서 일했고 명문여대인 웰즐리 대학에서는 ‘공화주의자 클럽’ 동아리를 이끌기도 했다.
그러다가 1960년대 말부터 미 전역에 불어닥친 민권운동 열풍, 특히 1968년의 마틴 루서 킹 목사 암살 사건과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민주당으로 정치 지향을 바꿨다.
1969년 진학한 예일대 로스쿨에서 아칸소 주 출신 법학도인 지금의 남편 빌을 만났고 1975년 10월에 결혼해 아칸소 주 리틀 록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남편 빌이 아칸소주 법무장관을 거쳐 1978년 주지사에 당선되는 등 정치인으로 날개를 펴는 동안 클린턴 전 장관은 변호사로 명성을 날렸다.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영향력 있는 100대 변호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빌이 1993년부터 2001년까지 대통령을 지내는 동안 ‘일하는 퍼스트레이디’로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일례로 국가보건개혁 테스크포스를 이끌면서 ‘힐러리케어’(Hillarycare)로 불리는 보건개혁을 추진하기도 했다.
백악관을 나와서는 2001년 1월부터 2009년 1월까지 8년간의 뉴욕 주 연방 상원의원을 지냈고, 이것이 ‘정치인 힐러리’로 본격적으로 변신하는 기회가 됐다.
2008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해 초반 무서운 대세론을 형성했지만, 당시 검은 돌풍을 일으킨 ‘신예’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결국 패배했다. 그러나 오바마 1기 행정부에서 4년간 국무장관직을 수행하면서 대선 주자로서의 ‘내공’을 쌓았다.
클린턴 전 장관 부부는 1980년 2월 외동딸 딸 첼시를 낳았고 첼시가 2010년 러시아계와 유대계 혈통을 가진 미국인 마크 메즈빈스키와 결혼한 뒤 2014년 첫 딸을 출산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다.
◇전당대회 통해 당 통합 마무리…부정직 이미지 극복이 관건
클린턴 전 장관은 경선 과정에서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과 힘겨운 대결을 벌여야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유일한 ‘적통’임에도 아웃사이더인 샌더스 의원의 무서운 돌풍 앞에 여러 번 고비를 맞았다.
특히 국무장관 재직 중 개인 이메일 계정을 사용했고, 여기에 기밀사항이 포함돼 논란이 벌어진 ‘이메일 스캔들’과 오바마 행정부의 최대 외교 실패 사례로 꼽히는 ‘벵가지 사건’에 발목이 잡혀 후보탈락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클린턴 전 장관은 우여곡절 끝에 경선을 승리로 장식했고, 본선 승리의 필수 조건인 당 화합도 비교적 손쉽게 이뤄냈다.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은 물론이고 최대 관건이었던 샌더스 의원의 지지도 끌어냈다. 이들 모두 내주 ‘힐러리 대관식’에 참석해 전방위 지원사격을 한다.
민주당이 클린턴 전 장관 중심으로 하나가 돼 일치단결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클린턴 전 장관에 대한 비호감도가 너무 높다는 데 있다. 부자 이미지, 특권층 이미지가 너무 강한 탓이다.
여기에다가 이메일 스캔들의 칼자루를 쥐었던 미 연방수사국(FBI)이 불기소 권고를 하고 법무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최대 악재를 털어냈지만, 여론의 반응은 오히려 냉담한 편이다. CBS 뉴스와 뉴욕타임스(NYT)의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이메일 스캔들 불기소 결정과 관계없이 클린턴 전 장관의 행동이 불법 또는 부적절하다는 응답이 무려 69%에 달했다.
선거 전문가들은 클린턴 전 장관이 앞으로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본선판을 좌우할 최대 변수 중 하나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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