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교육청 ‘책 폐기’ 언급 공문에 출판계 강력 반발문체부 “절차 투명성 요청했을 뿐” 해명
정부와 교육 당국이 학교도서관 추천도서 목록 중 문제도서를 지목해 폐기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이른바 ‘분서갱유’ 논란으로 교육 및 출판계에서 파열음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해당 도서들의 폐기를 언급한 공문이 실재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출판계는 “새로운 형태의 출판 및 사상의 탄압”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 반면, 지목된 문제도서 가운데 비전향장기수를 다룬 도서가 청소년 추천 대상으로 적절하느냐는 지적 또한 일각에서 제기되는 상황이다.
도서의 ‘폐기’를 언급한 공문을 보낸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공문 철회 등 수습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도서 폐기가 아닌 절차의 투명성 확보를 요청하는 취지의 공문을 보낸 것 뿐”이라며 논란의 원인제공자로 비쳐진 데 대해 난감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 논란의 발원지는 ‘경기도교육청’ 공문
지난달 19일 청년지식인포럼 ‘스토리K’는 정부 및 교육청 산하 전국 도서관의 근현대사 추천 도서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했다. 보수 성향의 이 단체는 지난해 6월부터 올해 4월까지 전국 460여개 도서관에서 추천된 9천여권의 책 가운데 어린이·청소년용 근현대사 책 40여권을 대상으로 조사했다며 이중 12권의 책이 친북한 성향의 내용을 담았다고 문제삼았다.
발표가 이뤄진 이틀 뒤인 21일 문화체육관광부 도서관정책기획단은 각 지방자치단체장과 교육청에 ‘공공도서관 ‘추천도서 관련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다.
공문은 ‘추천도서’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있으니 “추천도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도서관에서는 추천도서 선정방법 및 선정 기준을 사전 공개하여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는 내용을 담았다.
그로부터 1주일 뒤인 28일 경기도교육청은 초·중·고, 25개 교육지원청에 ‘언론보도관련 논란 도서 처리 협조’를 보냈다. 말은 협조이지만, 구체적인 후속조치로 ‘폐기 여부 결정 처리’와 책을 대여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편향된 시각을 갖지 않도록 지도하라는 ‘사후독후처리’를 명기했다.
정부와 교육청의 공문이 발송된 뒤 각급 학교에선 폐기 조치 등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논란과 문제제기 등이 잇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 출판계 “새로운 형태의 출판·사상 탄압” 반발
출판계는 민감하게 대응했다. 관련 출판사들과 저자들은 “출판의 자유 침해”라고 반발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정치적 성향의 인물이 이끄는 단체가 자의적으로 발표한 기준을 가지고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건 출판의 자유 침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지난 22일 공식 성명을 통해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드는 새로운 형태의 출판과 사상에 대한 탄압이 일어나고 있다고 규정한다”며 “이는 저자와 출판사에 대한 부당한 명예훼손임은 물론 도서 선정 주체인 학교 교사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독자들의 도서 선택의 자유도 훼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논란이 일파만파 번지자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22일 다시 각 학교에 공문을 보내 앞서의 공문을 폐기하며 수습에 나섰다.
교육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애초 공문 취지는 적절치 못했음을 분명히 한 것”이라며 “각급 학교가 자율적 의사 결정에 따라 문제를 처리해달라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문체부 조영주 도서관정책기획단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정부가 학교도서관 서가에서 특정 도서를 빼도록 압력을 행사하거나 정책을 전환한 사실이 없다”며 “오히려 불필요한 논란과 학교 내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 “자율적 추천 중요하지만, 투명성·적절성도 높여야”
추천도서 선정은 기본적으로 교육의 주체인 각급 학교 교사와 학생, 또 학부모들의 자율적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점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추천도서 목록이 학생들의 독서 선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최소한의 적절성 및 투명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스토리K가 문제삼은 12권의 책 가운데 비전향장기수의 삶을 다룬 책의 경우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에게 권장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론은 그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대목이다.
한 출판인회의 관계자는 “해당 도서는 국내 출판 과정에서 이미 내용에 대한 검증이 이뤄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어린 학생들이 접하기엔 다소 무리라는 게 상식적 판단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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