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억 기자의 건강노트] 천안함 장병들에게 외상후 스트레스 그림자가

[심재억 기자의 건강노트] 천안함 장병들에게 외상후 스트레스 그림자가

입력 2010-04-12 00:00
수정 2010-04-12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막 초여름에 들어 땡볕에 화단 모란잎이 쇠불알처럼 늘어지던 때였다. 다섯 살배기 조카가 그만 팔목을 돼지에게 물렸다. 새끼를 가져 예민한 암퇘지가 좋다고 겁없이 우리 안으로 손을 들이민 게 화근이었다. 다행히 뼈는 안 상했지만 팔뚝에 이빨자국이 깊게 파여 맨살이 드러났고, 검붉은 피멍이 들었다.

놀란 어른들이 조카를 안아다 팔목을 씻은 뒤 ‘아까징끼’라는 빨간 약을 바르고 ‘다이아찐’ 가루를 부어 겨우겨우 수습했는데, 그 뒤 조카는 아예 돼지우리 쪽으론 눈길도 주지 않았다. 개구리를 잡아다 돼지에게 줄 때도 저 쪽에 서서 바라만 볼 뿐이었다.

초등학교 때 말을 안 듣는다고 돼지우리 쪽으로 손을 잡아 끌자 파랗게 질려 바둥바둥 버티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 조카가 돼지고기를 입에 대기 시작한 것은 결혼하고 나서였다. 그때야 그걸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이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았지만 지금 생각하니 “아하, 그렇기도 했겠구나.”하고 이해가 됐다.

최근 천안함 생존 장병들이 기자회견을 가졌다. 웃음을 잃은 그들의 얼굴에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의 그림자가 어리는 듯했다. 젊은 그들이 겪은 고통, 평생 그걸 보듬고 진저리를 쳐야 하는 그들의 회한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렸다. 젊은 순정 때문에 더 쓰라릴 그들의 고통.

jeshim@seoul.co.kr

2010-04-12 2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사법고시'의 부활...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달 한 공식석상에서 로스쿨 제도와 관련해 ”법조인 양성 루트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과거제가 아니고 음서제가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사법고시 부활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낸 것인데요. 2017년도에 폐지된 사법고시의 부활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1. 부활하는 것이 맞다.
2. 부활돼서는 안된다.
3. 로스쿨 제도에 대한 개편정도가 적당하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