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 재난구호와 국제정치/정해문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글로벌 시대] 재난구호와 국제정치/정해문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입력 2013-12-23 00:00
수정 2013-12-2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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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문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정해문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어제의 공동체는 처참하게 사라졌다. 단란한 가정을 함께 꾸며온 7000여명의 처자식, 남편, 부모, 형제들은 온데간데없다. 삶의 터전을 허망하게 날려버리고 망연자실해 있는 400만 이재민의 눈앞이 캄캄하다.”, 40여일 전 초강력 태풍 하이옌이 할퀴고 지나간 초토화된 필리핀 레이테 섬에서 전해온 참상이다.

재난 대처는 타이밍이 생명이다. 동시에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국가의 이미지를 고양하는 공공외교의 중요한 현장이다. 미국, 일본, 영국, 호주, 캐나다 등은 기동성 있게 대규모 구호에 나섬으로써 외교의 비중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 웅변해 주고 있다.

우리 정부는 재해 발생 나흘 만에 500만 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 결정에 이어 향후 3년간 2000만 달러의 재건복구 지원 계획을 발표하였으며 4차에 걸쳐 긴급구호대를 파견하여 의료지원 활동에 주력해 왔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며칠 후면 한국군 520명 병력이 필리핀 태풍 피해지역에서 구호와 재건활동을 펼치게 된다. 향후 구호병력 파견의 기동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국회의 사후 동의제 도입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아울러 아세안+3(한·중·일) 및 동아시아정상회의 등 지역 내 다자협의체제에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재난관리, 인도적 지원 및 긴급대응 훈련에 적극 참여해 역내 재해대처 능력 제고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미·중·일 등 주요 이해당사국들이 보여준 재난구호 외교 현장의 대차대조표를 관찰하면서 앞으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미국은 핵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재해 나흘 만에 피해지역에 급파하고 6000여 명의 병력이 투입돼 수색, 구조, 구호와 의료지원 활동을 전개했다. 나아가 골드버그 신임대사는 미 국무부 역사상 가장 이른 아침 시간에 선서식을 마친 후 조기 부임하여 미국의 필리핀 긴급지원을 재난현장에서 진두지휘했으며, 케리 국무장관은 지난주 이번 태풍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타클로반시를 방문하여 초기 긴급구호는 물론 중·장기 재건 과정에서도 이재민들과 늘 함께할 것임을 천명함으로써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신뢰의 추를 하나 더 달아주었다.

일본 또한 자위대함정과 1000여명의 병력을 신속 파견하여 구호활동에 집중함으로써 필리핀을 통해 아세안의 마음을 일본으로 돌리는 징검다리를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아베 총리 취임 원년의 동남아 10개국 방문성과와 ‘12·14 일-아세안특별정상회의’ 성과를 접목시켜 입체적 총합외교를 구현했다. 이는 대중국관계에서 동남아를 우군화하려는 일본의 전략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라 하겠다.

이에 반해 중국은 처음 10만 달러 지원을 발표함으로써 속좁음을 드러내 주요 2개국(G2)으로서 면모에 구김살을 가게 했다. 또한 남중국해 도서 영유권을 둘러싼 필리핀과의 분쟁과 인도주의적 위기상황을 분리 대처할 수 있는 외교적 유연성과 성숙함을 보여주지 못해 지금까지 정성껏 가꿔 온 아세안 외교가 더욱 빛날 수 있는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 같다.

우리의 이니셔티브로 중견국 외교에 시동이 걸렸다. 국제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주요 이슈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중견국으로서 우리의 목소리를 훨씬 더 효과적으로 내기 위해서는 도덕적 권위가 뒷받침돼야 한다. 재난의 현장에 빨리 달려가 마음 어린 나눔의 미덕을 실천하는 노력은 이러한 권위의 중요한 구성요소다.
2013-12-2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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