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 흐르는 마을
지휘 선생님이 단에 오르기 전, 아이들은 여느 초등학교 아이들과 똑같다. 여자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삼삼오오 떠들고 남자아이들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있는 법이 없다. 악기는 저만큼 혼자 서 있거나 누워 있을 뿐이다. 30여명의 아이들이 만드는 부산함에 정신이 쏙 빠진다. 지휘를 맡은 이영헌 선생님이 들어서자 연습 채비를 한다. 음을 맞추기 시작하자 고학년생들은 조금 노련한 표정이 된다. 여름방학을 사흘 앞둔 그날은 1학기 마지막으로 전 단원이 모여서 연습하는 날이다. 다시 모이는 날은 축제 1주일 전쯤이다. 오늘 연습할 곡은 무대에 올리게 될 모차르트의 ‘작은 세레나데’. 선율은 누구나 들어 봤을 만큼 낯익다.
김남경 제공
1학기 마지막 오케스트라 연습에 참여한 학생들이 이영헌 선생님의 지휘 아래 모차르트의 곡 ‘작은 세레나데’를 연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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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락한 마을의 변신… “음악하겠다” 전학 오기도
이 학교는 77회 졸업생을 배출한 역사 깊은 학교로 한때는 학생수가 많아 주변에 3개의 분교까지 냈지만 근래 계속 쇠락했다. 그러다 2008년 몇 개의 악기를 구입하며 시작된 오케스트라가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지역에서 주목하면서 각종 행사에 초청돼 무대에도 오르고 언론과 방송도 탔다. 오케스트라 단원이었던 아이들이 졸업해 옆 계촌중학교 학생이 되자 중학교에서도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부모들도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음악을 하기 위해 아이들이 전학을 오는 사례도 생겼다. 계촌은 이제 ‘클래식’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이상할 게 없는 마을이 됐다.
계촌마을은 해발 700m에 위치한 청정하고 작은 산골마을로 인구 1200여명이 산다. 고랭지 채소와 양상추, 고추 등을 기르고 산나물, 절임배추 등을 판매하며 생계를 이어 간다. 송어 잡기, 더덕 캐기, 산나물 채집 등 각종 체험상품을 운영하기도 하지만 사실 올림픽이 열리는 무대나 평창의 주 관광지로 꼽히는 효석문화마을, 대관령목장 등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큰 부가가치는 올리지 못하는 곳이다. 주민들도 그저 평범한 강원도의 산골마을이라고 말한다.
그러던 마을이 지난해부터 현대차정몽구재단이 주최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학협력단이 주관하는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의 대표 마을 중 하나가 되면서 날개를 달았다. 재단과 한예종이 참여해 아이들의 음악교육을 지원하고 여름에 ‘클래식’을 테마로 하는 마을 축제를 열게 됐다. 지난해 첼리스트 정명화와 음악가들이 참여해 첫 축제를 치렀다.
올해는 두 번째 계촌마을 클래식 거리축제를 오는 19~21일 연다. 정명화와 판소리 대가 안숙선 등 두 거장이 참여해 협연을 할 예정이라 전국의 음악 애호가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보다 많은 전문, 아마추어 음악가들도 참여한다. 마을 안에 3개의 무대가 세워지는데 특히 초등학교 운동장 느티나무 무대는 축제의 메인 무대가 될 예정이다. 두 거장도 축제 첫날 이 무대에 오른다. 계촌초, 중학교의 아이들도 축제의 주인공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거장들의 협연에 앞선 개막식 오프닝 무대에 연주자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현대차정몽구재단 제공
지난해 열렸던 제1회 계촌마을 클래식 축제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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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실 한편의 신발장을 채우고 있는 까만 구두. 무대에 오를 때만 신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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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촌마을에 클래식 바람을 몰고 온 계촌초등학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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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이 축제가 일반인들이 찾아가 계촌의 클래식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이지만 ‘클래식’을 테마로 다양한 변신을 준비 중이다. 클래식 마을을 알리는 조형물과 벽화, 무대 등이 들어서고 내년에는 좀 더 자주 마을을 찾을 수 있도록 상설 공연을 열 계획이다.
다시 아이들의 연습장. 부산한 불협화음으로 시작했지만 연습을 거듭할수록 곡은 완성도가 높아 간다. 마지막으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선율이 신나게 울린다. 왠지 모를 긴장감이 서려 있던 모차르트와는 달리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돈다. 연습실 한편에는 아이들이 무대에 오를 때 신는 까만 구두가 신발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하얀 셔츠에 까만 바지와 치마를 차려입고 까만 구두를 신으면 무대에 오를 채비를 마친 것이다. 뒤축이 닳은 아이들의 구두가 정겹다.
연습이 끝난 후 아이들은 여느 초등학생처럼 운동장에 삼삼오오 모여 학원차를 기다린다. 연습 힘들지 않냐, 악기 배우는 게 재미있냐는 질문을 슬쩍 던져 봤다. 알 듯 모를 듯 수줍은 미소만 날리는 산골 아이들이 너무 예쁘다. 이 아이들이 반짝이게 구두를 닦고 올라설 무대에서의 모습이 너무도 궁금해진다.
글 사진 여행작가 enkaykim@naver.com
2016-08-0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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